시장이 움직이려면 기업 실적이나 신제품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이번 주 마지막 미 증시일이었던 금요일에는 뉴스만으로 두 개의 섹터가 크게 움직였습니다.
바로 원자력과 양자 컴퓨터 기술 분야입니다. 왜냐.
미국과 영국이 인공지능, 양자 컴퓨팅, 원자력을 포괄하는 공동 개발 협정, 바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겁니다.
시장에서는 이것을 단순한 외교 제스처로 보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앞으로 엄청난 자금과 정책적 의지를 미래 기술에 쏟아붓겠다는 신호로 해석했고, 투자자들은 곧바로 반응했습니다. 금요일, 원자력과 양자 관련 종목들이 단숨에 급등한 이유가 여기에 있죠.
이번 MOU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조약은 아닙니다. 당장 돈을 쓰거나 기존 제도를 바꾸도록 강제하는 내용도 아니죠. 다만 방향을 제시하는 청사진의 성격을 갖습니다. 주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양국은 인공지능, 원자력, 양자 컴퓨팅 연구 전반에서 공동 연구를 추진합니다.
특히 양자 분야에서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그리고 상호 호환성 표준을 마련할 태스크포스를 꾸리기로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협정을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효과를 불러왔다”고 강조했고, 지난 1년간 미국에 17조 달러가 투자됐다며 미국이 AI·디지털 기술·고성능 컴퓨팅 분야에서 세계를 주도할 것이라고 자신했습니다. 수치가 과장됐을 가능성은 있지만, 이번 협정이 시장을 겨냥한 ‘정치적 메시지’라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이번 협정 발표 후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원자력 관련주였습니다.
소형 원자로를 개발 중인 중소형 기업들 주가가 하루 만에 20% 넘게 오르면서 시장의 시선을 사로잡았죠. 전날 올렸던 나노 뉴클리어 에너지 주식 NNE 주가가 대표적입니다.
배경에는 미국 에너지부(DOE), 국립과학재단(NSF), 영국 과학부와 UK 연구혁신청이 함께 발표한 협정과 규제 완화가 있었습니다. 핵심은 인허가 과정을 서로 인정하고 연구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진행하겠다는 건데요.
지금까지는 원전 설계 승인을 받는 데만 10년 가까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미·영 협정은 양국이 서로의 인허가를 인정해 절차를 단축하는 방향을 담고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수년치 시간을 단숨에 절약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거죠.
기존 원전은 거대한 냉각탑을 갖춘 초대형 설비입니다. 반면 소형 모듈 원자로(SMR)는 공장에서 조립된 후 현장으로 옮겨 설치할 수 있는 작은 단위형 발전소입니다. 도시 전체뿐만 아니라 데이터센터, 산업시설, 심지어는 외딴 지역까지 유연하게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죠. 탄소 배출은 줄이고, 설치 시간은 단축하면서 ‘깨끗한 기저 전력’을 제공한다는 겁니다.
여기에 이번 협정은 핵융합까지 포함했습니다. 핵분열(원자를 쪼개는 방식)과 달리 핵융합은 원자를 결합시켜 에너지를 내는 과정인데, 태양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원리와 같죠. 핵융합은 방사능 배출이 훨씬 적고, 폭발 위험도 없어서 ‘궁극의 청정에너지’로 불립니다.
인공지능 학습과 양자 연구는 엄청난 전력을 필요로 합니다. 미래의 고성능 컴퓨팅을 뒷받침할 에너지원으로 핵융합이 거론되는 이유입니다.
이 때문에 Oklo(오클로, 주가 28.83% 상승),
NuScale Power(뉴스케일 파워, 22.69% 상승),
Nano Nuclear Energy(나노 뉴클리어 에너지, 21.2% 상승) 같은 기업들이 이날 시장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양자 컴퓨팅까지 뛰어든 이유
양자 컴퓨팅은 이번 협정에서 구체적인 실행 계획으로 포함됐습니다. 양국은 공동 태스크포스를 꾸려 양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표준을 함께 개발할 전망입니다.
그런데 왜 표준이 중요할까요? 현재 기업마다 양자 컴퓨터를 구현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어떤 곳은 초전도 방식, 어떤 곳은 이온 포획 방식을 씁니다. 이대로라면 생태계가 쪼개질 위험이 있죠. 이번 협정은 글로벌 표준을 맞추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가 양자 기반 사이버 공격에 대응할 방어 기술을 가속화하는 행정명령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아직은 모호하지만, 정부 차원의 자금 투입 가능성을 암시하기에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한 겁니다.
실제로 양자 기술은 사이버 보안과도 직결됩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암호 체계는 기존 컴퓨터로는 풀기 거의 불가능한 수학 문제에 기반합니다. 그런데 충분히 강력한 양자 컴퓨터라면 이 문제를 순식간에 풀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각국 정부와 기업은 양자 내성 암호, 즉 포스트-양자 암호(Post-Quantum Cryptography, PQC)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번 보도는 바로 이 분야에 자금이 흘러들 수 있다는 기대를 키운 겁니다.
리게티 컴퓨팅(Rigetti, 15.28% 상승)은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양자 하드웨어 대표주로 꼽히며 주가가 뛰었고,
퀀텀 코퍼레이션(QMCO, 40.59% 상승)은 가장 큰 폭의 상승을 기록했습니다.
Quantum Computing Inc.(QUBT, 26.81% 상승)와
D-Wave Quantum(QBTS, 11.91% 상승) 역시 동반 상승했죠.
여기에 아이온큐(IonQ, 5.39% 상승)는 자체 뉴스도 있었습니다. 정부 계약업체인 벡터 아토믹(Vector Atomic)을 인수한다고 발표했고, 에너지부와 허니웰과의 협력도 공개했죠.
이렇게 하루에 20~40% 오르는 주가를 보면 “이제 시대가 왔다”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더 복잡합니다.
우선 이번 MOU는 법적 구속력이 없습니다. 돈을 반드시 쓰거나 제도를 바꾸겠다는 약속이 아니죠. 정치적 메시지에 가깝습니다.
둘째, 주가는 현실보다 빠릅니다. 하루 만에 20~40% 급등한 종목들은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고, 언제든 조정이 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셋째, 기술의 현실은 여전히 멀었습니다. SMR은 가능성이 크지만 건설 과정에서 변수는 많습니다. 핵융합은 아직 상업화가 요원합니다. 양자 컴퓨터 역시 에러율이 높아 실용화까지는 갈 길이 멀고, 할 수 있는 작업이 제한적입니다. ‘곧 암호가 깨진다’는 식의 과장은 현실과는 거리가 멀죠. 정부의 지원은 중요한 신호지만, 상업화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참고로 이제 미국 백악관은 이번 발표를 두고 “황금 원자력 시대의 서막”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과연 이 말이 현실이 될지는 시간이 말해줄 겁니다. 분명한 건 이제 원자력과 양자 컴퓨터가 단순한 과학 연구가 아니라 국가 전략 인프라로 취급된다는 사실입니다. 기술 표준과 공급망, 에너지 안보까지 국가 차원에서 직접 개입하고 있죠.
투자자에게는 앞으로도 이런 테마가 반복적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이고, 기술자에게는 글로벌 표준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일반 대중에게는 향후 수십 년간 우리의 에너지, 통신, 보안이 어떤 기술 위에 세워질지 이미 판이 짜이고 있다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이번 협정은 실제 결과로 이어지는 출발점일까요, 아니면 잠시 시장을 흔든 화려한 헤드라인에 불과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