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생수 시장은 오랫동안 제주삼다수가 절대적인 강자로 자리 잡아왔습니다. 제주도의 청정 지하수를 기반으로 한 브랜드 파워와 유통망, 공기업 성격이 결합된 독보적인 경쟁력이 삼다수의 독주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생수 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격화되고 있으며, ‘물의 전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새로운 도전자들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습니다. 삼다수가 20년 넘게 지켜온 시장 지위가 흔들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가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힙니다. 과거에는 ‘삼다수=생수’라는 공식이 자연스럽게 성립했지만, 지금은 대형 유통사들이 앞다투어 자체 브랜드(PB) 생수를 내놓으면서 가격 경쟁이 치열해졌습니다. 대형마트, 편의점, 온라인 플랫폼이 자사 브랜드 생수를 출시해 소비자들에게 선택지를 넓혀주면서 삼다수의 절대적 입지는 서서히 약화되고 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삼다수와 타 브랜드의 품질 차이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가격이 더 저렴한 PB 생수로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또한 프리미엄 생수 시장의 성장도 눈여겨볼 부분입니다. 에비앙, 피지워터, 페리에 같은 해외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고급 레스토랑, 호텔, 카페를 중심으로 입지를 강화하면서 소비자들에게 ‘물도 차별화된 가치가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국내 기업들도 이에 맞서 ‘프리미엄 제주수’나 ‘미네랄 강화수’ 같은 제품을 내놓으며 새로운 수요층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목을 축이는 용도를 넘어 건강, 웰빙, 심지어는 브랜드 이미지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생수 시장이 다층화되고 있습니다.


유통 구조의 변화도 삼다수 독주를 흔드는 또 하나의 요인입니다. 과거 삼다수는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제주개발공사가 직접 관리하며, 유통 채널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온라인 쇼핑이 급속히 확대되면서 유통의 힘은 이커머스 기업들에게 넘어가고 있습니다. 쿠팡, 마켓컬리, 네이버 쇼핑 등 온라인 플랫폼들은 자체 브랜드 생수나 협력 업체의 제품을 앞세워 물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으며, 배송 편의성까지 갖추면서 소비자들의 선택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습니다. 한 번 구독 서비스를 시작한 소비자는 동일 브랜드를 꾸준히 소비하는 경향이 있어, 삼다수의 매출 기반에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가격 경쟁 심화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생수는 원가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은 제품이기 때문에 대형 유통업체들이 판촉 경쟁에 활용하기 좋은 아이템입니다. 실제로 대형마트에서는 ‘생수 묶음’을 최저가로 내세워 소비자를 유인하고, PB 생수를 원가에 가깝게 판매하면서도 다른 상품 매출을 올리는 교차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바로 삼다수의 판매량 감소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삼다수가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려 해도, 여전히 다수 소비자에게 생수는 ‘가격이 중요한 소비재’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 발목을 잡습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삼다수는 나름의 대응 전략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브랜드 신뢰도와 ‘청정 제주수’라는 정체성을 강조하며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고, 친환경 패키징이나 ESG 활동을 통해 이미지를 차별화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시장 점유율 방어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입니다. 이미 소비자들은 ‘물의 다양성’을 경험하고 있으며, 브랜드 충성도는 과거만큼 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생수 시장이 단순히 대기업 간 경쟁에 그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역 기반의 소규모 업체들도 저가 생수로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으며, 건강을 강조한 기능성 생수, 특정 미네랄 함량을 강조한 맞춤형 생수 등이 꾸준히 출시되고 있습니다. 이는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넓히는 동시에 삼다수 독주 체제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해외 시장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산토리, 아사히 등 대기업들이 생수 브랜드를 다변화하면서 시장을 장악했고, 미국에서는 폴란드 스프링, 다사니, 아쿠아피나 같은 대형 브랜드가 PB 상품의 도전에 직면해 시장 점유율을 방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같은 흐름 속에서 삼다수가 과거의 영광을 그대로 이어가기 어려운 구조적 변화에 직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삼다수의 입지가 곧바로 무너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여전히 ‘제주 청정수’라는 이미지와 높은 인지도는 경쟁사들이 쉽게 넘어서기 어려운 자산입니다. 또한 정부와 지자체가 일정 부분 삼다수의 공공적 성격을 유지하는 만큼, 브랜드 신뢰도는 당분간 강력한 무기입니다. 다만 독점적 지위가 약화되고 시장이 다변화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며, 삼다수가 이에 맞춰 새로운 성장 전략을 모색해야 할 시점임은 분명합니다.


결국 ‘물의 전쟁’은 단순히 누가 더 많은 생수를 파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소비자의 인식 변화, 유통 채널의 혁신, 가격 경쟁의 심화, 프리미엄 시장의 성장, 그리고 ESG 같은 사회적 가치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산업 구조 변화의 한 단면입니다. 삼다수가 앞으로도 명성을 이어가려면 과거의 독주 전략이 아니라, 변화하는 소비자 니즈에 부응하고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는 브랜드로 진화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삼다수는 ‘물의 전쟁’ 속에서도 여전히 시장의 중심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