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두코바니의 원자력 발전소 4개 냉각탑에서 수증기가 솟아오르는 모습. 연합뉴스.
한국과 미국 원전 기업 웨스팅하우스(WEC)가 올 1월에 맺은 ‘수출제한 및 시장 분할’ 합의안을 재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
한미가 소형모듈원전(SMR) 개발과 시공 등 원전 산업 전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만큼 일방적으로 한국에 불리한 합의안을 개정해 양국의 공동 이익을 최대화해야 한다는 지적
전문가들은 먼저 시장 분할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음. 합의안에 따르면 한국수력원자력 등 한국 기업은 미국·유럽(체코 제외)·일본 등에 진출할 수 없음
특히 동유럽 시장 제한이 뼈아픔. 원전 수출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러시아·중국·인도 등과 WEC의 거점인 미국을 제외하면 동유럽이 현재 세계 최대 원전 시장이기 때문.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폴란드·슬로베니아 등 동유럽 국가가 건설을 계획 중인 원전은 총 52기에 이름. SMR이 아닌 대형 원전만 따져도 그 규모가 총 22기(2만 6540㎿)에 달함
게다가 동유럽은 그간 한수원을 비롯한 ‘팀코리아’가 원전 사업 수주를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여 온 지역이기도 함. 특히 폴란드의 경우 한수원이 2018년부터 수주 활동을 시작해 원전 수출의 초석을 닦아 놓은 국가로 평가받고 있음. 하지만 이 같은 노력은 한수원·한전·WEC 3사가 진출 가능 지역을 구분하고 상대 지역에서 그간 진행 중이었던 모든 논의를 중단하기로 합의하면서 물거품이 됐음.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최근 국회에 출석해 “폴란드에서 일단 철수한 상태”라고 밝힌 바 있음
한수원은 최대 2400㎿ 규모의 대형 원전 건설을 준비 중인 슬로베니아와도 지난해 6월 협력 방안을 논의했지만 WEC와 협정을 맺은 직후인 올해 2월 입찰 경쟁 참여를 포기했음. 전직 한수원 고위 관계자는 “신규 원전 사업 수주를 위해 각국에 쏟은 시간과 비용을 고려하면 한국이 진출 가능한 지역에 동유럽이 빠진 것은 매우 아쉬운 지점”이라며 “애초에 진출 가능·불가능 지역을 나누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말했음
WEC의 기술 독립 검증을 받기 전까지는 SMR을 독자 수출할 수 없다는 것도 반드시 개정해야 하는 독소 조항임
SMR은 2040년 시장 규모가 400조 원대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되는 먹거리 사업. 한국이 개발 중인 혁신형 SMR(i-SMR)은 WEC의 가압 경수로 모델을 소형화하는 것으로 이 과정에서 냉각재 원료를 변경하더라도 WEC 측이 언제든 억지를 부릴 가능성이 남아 있음
기술 검증을 미국 소속 기관이 수행하도록 한 것도 대표적 독소 조항임. 미국의 원천 기술인 APR1400 노형 수출은 허가가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SMR 등에 대해서는 예외 조항을 달아둬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당당히 기술력을 겨룰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원전 업계의 지적
국내 원전 기업의 한 관계자는 “기술 자립이 상당히 진전됐고 대형 원전을 소형화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기술인데 차세대 먹거리가 될 SMR까지 협정문의 구속을 받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라고 말했음
원자로 1기당 9000억 원 규모의 물품·용역 구매 계약도 개정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원전 업계의 시각. 규모도 규모지만 한국 측이 WEC에 약속한 구매 목록에는 원자력 제어계측시스템(MMIS), 핵증기 공급 계통(NSS) 등 핵심 기자재와 시스템이 모두 포함됐기 때문
원전 1기당 투입되는 약 10조 원의 건설 비용 중 핵심 설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30% 수준이라는 점과 해외 일감 확보를 통한 국내 원전 기업들의 핵심 설비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조항 역시 재협상 필요성이 크다는 것임
전문가들은 또 체코·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원전 연료의 100%를, 나머지 지역의 경우 원전 연료의 50%를 WEC에서 공급하기로 한 것도 국내 원전 연료 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조항이 될 수 있다고 지적
이 같은 합의문 재개정을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노력도 반드시 필요. 1970년대부터 이어져 온 한미 원자력 협정과 올해 1월 초 맺은 한미 원자력 수출 및 협력 원칙에 관한 기관 간 약정(MOU)을 바탕으로 민간 협력 강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것임. 원전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가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원전 분야에서 미국의 신뢰를 되찾는 노력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
<시사점>
서울경제신문은 지속적으로 웨스팅하우스와의 협약 상 독소조항을 풀자는 논조의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신문사가 독자의 알 권리를 위해 심층취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하겠습니다.
한수원-한전과 웨스팅하우스 간의 계약이 불합리한 수준으로 이루어진 이유는 1) 기술소유권 문제로 인한 법적 분쟁 여지 해소, 2) 체코원전 수주를 위한 긴박한 일정, 3) 미국과의 원자력 협력 등 세 가지 큰 이유로 인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일각에서는 웨스팅하우스와의 합의를 통해 천문학적인 소송비용을 절감시켰고, 체코원전을 수주했으며, 웨스팅하우스와의 협력을 통해 무궁무진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성공적 합의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그래도 그렇지 이 내용들은 너무 한 것이 아니냐, 체코 원전 수주가 급했던 전임 집권층의 정치적 목적으로 불합리한 계약을 한 것이 아니냐는 충분한 의심을 사고 있습니다.
한수원-한전과 웨스팅하우스 간의 계약은 국정감사가 필요한 영역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국정감사를 통해 이러한 계약이 이루어진 과정(절차적 정당성과 계약과정의 정당성 등)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았으면 합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단순히 보면, 한수원-한전과 웨스팅하우스 간의 계약이 50대 50으로 이루어진 형태가 아니라 20-80이란 기울어진 계약이란 생각이 듭니다. 서울경제신문이 지적하듯이 애초에 진출가능지역 진출불가능지역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좀 말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계약의 내용을 보면, 계약 안 자체가 한국 측이 마련했다기 보다는 웨스팅하우스가 만든 안을 그대로 수용했다고 보여집니다.
최근에는 웨스팅하우스와의 미국 합작사 논의가 나오면서 웨스팅하우스와 계약 합의한 것이 신의 한수였다는 일각의 주장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이루어진 계약을 어떻게 하겠느냐, 파기도 수정도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해볼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정리하면, 동 계약은 국정감사가 필요하며, 국정감사 과정에서 보다 구체적인 내용이 밝혀져야 하겠습니다.
웨스팅하우스와의 계약을 파기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되며, 특히 합작사 설립이 논의되고 있는 만큼 계약을 흔들면 합작사 설립도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한-미 정부간 외교채널과 한-캐나다 정부간 외교채널을 활용하고, 비공개 협상을 통해 현재 계약의 독소조항을 하나씩 풀어나가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관련 기사>
https://n.news.naver.com/article/newspaper/011/0004526463?date=2025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