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석유화학업계에 '5조 원의 만기 폭탄'이라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습니다. 업황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국내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이 발행한 회사채와 기업어음(CP) 중 1년 안에 갚아야 할 금액이 무려 5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단순한 자금난을 넘어 업계 전반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합니다.

벼랑 끝에 선 기업들, 만기 도래 현황은?


한국경제신문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10대 석유화학 기업의 전체 시장성 차입금은 약 18조 5천억 원에 달합니다. 이 중 만기가 1년 이내인 금액만 5조 2,900억 원에 이릅니다. 특히, 한화솔루션(1조 8,250억 원)과 롯데케미칼(1조 3,800억 원)은 1조 원이 넘는 큰 금액을 단기간 내에 상환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더 큰 문제는 HD현대케미칼, 한화토탈에너지스, 여천NCC 등 일부 기업들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현금보다 갚아야 할 빚이 훨씬 많아 자체적으로 자금난을 해결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왜 이런 위기에 처했을까?


석유화학 기업들이 자금난에 빠진 주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악화된 업황과 투자 심리: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공급 과잉으로 석유화학 제품 수요가 줄어들면서 실적이 크게 악화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의 신용등급은 줄줄이 하향 조정되었고,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아 새로운 회사채를 발행해 기존 빚을 갚는 '차환'이 사실상 불가능해졌습니다.
  • 부족한 현금성 자산: 수년간 누적된 영업 손실로 기업들이 가진 현금이 바닥났습니다. 돈을 빌리기는커녕, 기존에 쌓아뒀던 현금마저 고갈되면서 긴급한 상황에 대응할 여력이 사라진 것입니다.
  • 합작사의 복잡한 구조: HD현대케미칼, 한화토탈에너지스처럼 여러 기업이 함께 투자한 '합작사'는 자금 지원 결정이 쉽지 않습니다. 최근 여천NCC의 경우, 대주주 간의 이견으로 자금 지원이 늦어지면서 부도설까지 나오기도 했습니다.


정부의 입장과 앞으로의 과제


정부는 석유화학 기업들에 "시장성 차입금은 대주주가 유상증자 등을 통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는 정부가 직접적인 구제금융보다는 기업의 자체적인 해결 노력을 강조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하지만 자금난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기업들의 신용 위험이 금융권과 개인 투자자들에게까지 번질 수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석유화학 업계가 이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함께 대주주들의 과감한 지원이 필수적일 것으로 보입니다.
과연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이 만기 폭탄을 무사히 넘기고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