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농업 구조를 논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조직은 농협(National Agricultural Cooperative Federation, NACF)입니다. 2024년 기준 농협금융지주는 순이익 2조 4,537억 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고, 이자이익은 약 8조 4,972억 원, 비이자이익은 1조 7,991억 원에 달했습니다. 핵심 계열사인 NH농협은행만 해도 순이익이 1조 8,070억 원 수준이었으며, 이는 전년 대비 1.5% 증가한 수치입니다. 그에 반해 실물경제를 담당하는 농협경제지주는 2024년 724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격차는 농업 지원 사업비 등을 농협금융이 떠안는 구조가 지속됨을 보여줍니다.
농협은 1961년 농업협동조합과 농업은행의 통합으로 출범했습니다. 설립 목적은 농민의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국가 균형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농민들은 자금 조달과 유통망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농협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과 유통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해 왔습니다. 농협은 1981년 3계층 조직을 2계층으로 단순화했으며, 1995년에는 금융과 유통·공급 부문을 분리해 전문성을 강화했습니다. 2012년에는 금융 부문과 실물경제 부문을 각각 담당하는 농협금융지주와 농협경제지주로 정식 분리되었고, 이를 통해 금융 서비스와 농산물 유통·판매를 각각 체계적으로 운영하는 구조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한국 과수 산업의 대표 브랜드인 청송 사과는 품질과 브랜드력으로 국내 프리미엄 시장에서 자리 잡았지만, 최근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사과 관세 완화 가능성이 제기되자 농가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미국산 사과는 대규모 생산과 저비용 유통망을 기반으로 가격 경쟁력이 높기 때문에, 국내 청송 사과와의 직접 경쟁이 시작될 경우 농민들의 생계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협상 과정에서 배와 감자 등 다른 과일·채소 품목도 관세 인하 및 방역 규제 완화 대상으로 거론되면서, 국내 과수와 채소 농가 모두 불안에 휩싸였습니다. 배는 사과와 비슷한 소비 패턴을 갖는 과일로, 수입 물량 증가 시 농가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으며, 감자는 미국의 대량 생산력과 유통 네트워크를 통해 유입될 경우 국내 시장 경쟁력이 크게 저하될 수 있습니다.
농산물 유통 구조의 불투명성과 비효율성도 문제입니다. 농민들이 정성껏 재배한 농산물은 도매상과 유통업자를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가격이 크게 상승하지만, 농가가 실제로 수취하는 금액은 제한적입니다. 소비자가 부담하는 농산물 가격과 농가가 받는 가격 간 격차가 심해지며, 농가 소득은 늘지 않고 소비자 부담만 커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농협은 공동 출하와 판매 방식으로 협상력을 높이려 노력해 왔지만, 대형 유통업체의 시장 지배력 강화와 소비자의 구매 패턴이 온라인 또는 직거래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되면서 기존 구조만으로는 한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농협과 유통업체가 단순히 농산물을 유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브랜드화와 프리미엄화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청송 사과뿐 아니라 경북 배, 제주 감귤, 강원 감자와 같은 지역 특산물의 고유 스토리를 발굴해 소비자에게 차별화된 가치를 전달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온라인 직거래 플랫폼, 농산물 구독 서비스, 지역 브랜드 팩 등을 활용해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고, 소비자와의 직접 연결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최근에는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잇는 구독 서비스 및 플랫폼 기반 마케팅이 증가하고 있어서, 농협이 중심이 되어 이를 확대하면 농가의 수익 안정성과 소비자의 합리적 소비가 공동 실현될 수 있습니다.
농가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는 단순한 판로 확보를 넘어 품질 혁신과 기술 지원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기후 변화와 재배 환경 불안정, 고령화 등의 요인으로 인해 과수 품질이 불안정해지고 있는 가운데, 스마트팜 기술과 데이터 기반 재배 관리 시스템의 도입이 필수적입니다. 농협은 금융과 기술 지원을 결합해 농민들이 최신 재배 기술을 활용하고 품질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농협과 유통업체들이 협력해 농산물 가치사슬 전반을 혁신한다면, 한국 농업은 단순한 1차 산업을 넘어 첨단화된 산업으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 지역 특산물 중심의 브랜드 마케팅과 글로벌 수출 전략을 병행한다면 청송 사과 같은 프리미엄 농산물은 해외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정부 역시 농업 R\&D 투자, 수출 지원, 물류 인프라 확충 등을 통해 이러한 변화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청송 사과 사태는 단순히 한 품목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농업이 직면한 구조적 과제의 상징적 사례입니다. 농협과 정부, 유통업계가 함께 협력하며 새로운 유통 모델과 지원 체계를 구축해 나간다면, 한국 농업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