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의 역설
주주 환원 기조 강화로 국내 주요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 규모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투자 여력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
실제 삼성전자가 1년간 매입하는 자사주 10조 원은 올 1분기 국내 설비투자금(자본적지출·CAPEX)과 맞먹고 국내 법인 보유 현금성 자산의 3배 이상
특히 새 정부 출범 후 증시 부양과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상법 개정안을 처리하고 나아가 집중투표제, 자사주 의무 소각 등을 밀어붙이면서 ‘과속 입법’이 오히려 기업들의 투자 실탄을 마르게 한다는 비판
매일 한 건씩 나오는 상법 개정안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등을 담은 1차 상법 개정안이 이달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15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자마자 2차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면서 관련 내용을 다루는 각종 세미나마다 기업 관계자들로 북새통
상법 개정 이후 기업 관계자들이 가장 혼란스러워하는 지점은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어떻게 현실화하느냐는 것. 최대주주와 소액주주를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다소 모호한 측면이 있기 때문. 공평한 대우를 어떻게 평가하고, 지분율에 따른 실질적 대우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등 형식적이고 실질적인 내용까지 모두 고려해야 함. 합병·분할·유상증자 등 기업의 자본 구조를 변경하는 의사 결정은 더욱 접근이 어렵움. 주주 충실 의무를 반영하려면 정관을 바꿔야 하는데 이는 주총의 특별 결의 대상
상장사 입장에서는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보다 부담스러운 것이 자사주 의무 소각. 자사주를 모두 소각할 경우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이 33% 미만으로 하락하는 곳이 871개사로 추산될 만큼 경영권 위협에 즉각 노출
주주 권익 침해 논란 등으로 교환사채(EB) 발행 등 자사주 활용 계획도 쉽지 않은 분위기
문제는 국회에 제출돼 있는 자사주 의무 소각 법안만 3건인 데다 각각 취득 후 소각 기간이 3년(김현정), 1년(김남근), 6개월(차규근) 등으로 제각각
주주권 강화를 둘러싼 논쟁
주주 권리 강화를 외치는 편에서는 해외 주요국과 비교해 낮은 주주 환원율과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 빈약한 신산업 생태계 경쟁력 등을 볼 때 주주 권리를 강화해야 증시가 살아나고 산업 경쟁력도 강화될 수 있다고 주장
하지만 반대편에서는 제조업을 주력으로 삼고 있는 국내 산업구조 특성상 주주 환원율을 과도하게 높이면 중장기적인 투자 동력이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
주주권 강화가 필요하다고 보는 이들은 장기간 주요 국가 평균을 밑돌아온 주주 환원율과 이에 따라 저평가된 국내 증시를 주목
글로벌 자문 회사 PwC가 지난해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들의 배당성향은 40.5%로 대만(57.6%), 인도(64.7%) 등과 비교해서도 떨어짐. 국내 증시 상장사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04배에 그치는데 이는 신흥(1.58배)·선진국(2.50배) 평균보다 유의미하게 낮음. 낮은 배당성향 등 인색한 주주 환원이 증시 저평가로 이어졌다고 해석하는 것
지나친 주주권 강화를 경계하는 편에서는 산업구조를 주목.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은 대규모 자본적지출(CAPEX)이 필요한 제조업인데 주주 환원율을 과도하게 높여나가면 투자 재원이 고갈돼 중장기 성장 동력도 상실할 수 있다는 지적
주주 환원율이 높은 미국 기업들은 대부분 기술·서비스 기업이어서 사업 경쟁력 강화에 필요한 연구개발(R&D) 지출을 영업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어 주주 환원율이 높게 나타난다는 분석
미국 증시 상장을 주로 주관하는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산업별로 회계기준 차이가 발생하면서 주주 환원율도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
우리나라 기업들이 시가총액만 수조 달러를 웃도는 미국의 글로벌 기업을 그대로 따라가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나옴
R&D에 치중하고 제품 생산 등 여타 영역은 외주를 맡기는 미국 기업들은 압도적인 영업이익률을 기반으로 주주 환원을 늘리고도 높은 배당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단기간 벤치마킹하기 어려운 방식이라는 설명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 “미국 회사는 ‘글로벌 지배력’을 통해 매우 높은 영업 마진율을 달성한다”며 “한국 회사들이 이런 높은 이익율을 빠른 시간 안에 모방·추격하기는 어렵다”
<시사점>
정부가 주주권 강화, 자사주 소각, 배당성향 제고 등을 통해 주식시장을 부양하고 있고, 실제로 주식시장이 화답하여 주가가 3200포인트를 돌파한 후 4000포인트, 5000포인트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오늘 서울경제신문은 이러한 정부의 행보에 좀 반대하는 듯한 뉘앙스의 기사를 게재하였습니다. 첫째는 자사주 매입이 늘면서 투자여력이 감소하고 있다는 점, 둘째는 자사주 소각으로 경영권 위협에 노출될 기업이 적지않다는 점, 셋째는 모든 주주의 공평한 대우라는 모호한 개념의 사용으로 기업들이 갈팡지팡하고 있는 점, 넷째는 주주권 강화가 제조업 위주의 한국 산업구조와는 맞지않다는 점 등입니다.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은 자본적 지출이 필요한 제조업인데 주주환원율을 높이면 투자재원이 고갈돼 중장기 성장동력을 상실할 수 있으며, 기술서비스업 중심의 미국 기업과 같이 볼 수 없는 측면이 있다는 설명입니다.
어떠한 정책이라도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이 있기 마련입니다. 지금은 새로운 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과정에 있으며, 천만이 넘는 주식투자자가 잠재적인 현 정부의 지지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상되는 정책의 부작용을 거론할 수 있는 언론의 기능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관련 기사>
https://n.news.naver.com/article/newspaper/011/0004511743?date=2025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