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선전하던 시절은 빠르게 지나간 듯합니다. 최근 발표된 2025년 상반기 전기차 판매 실적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의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4.6% 수준으로, 불과 1년 전인 2024년 상반기의 7.5%에서 급락했습니다. 전년도 대비 약 3%포인트의 하락은 단순한 판매 부진을 넘어 구조적인 전략 실패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특히, 현대차가 2024년 상반기까지 북미 전기차 판매 대수 5만7,000대를 기록하며 GM, 포드에 이어 4위 자리를 지켰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4만2,000대 수준에 머무르며 리비안에도 밀릴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테슬라가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킨 가운데, 중국계 부품을 활용한 미국 로컬 브랜드들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빠르게 추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무뇨스 글로벌 COO가 전기차 전략을 직접 진두지휘한 첫 해인 2024년, 현대차그룹은 야심 찬 계획과 함께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섰습니다.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에 건설 중인 전기차 전용 메타플랜트를 중심으로 2025년 IRA 보조금 요건을 만족시키기 위한 기반 구축에 집중했으며, 전기차 전용 라인 구축, 딜러 교육 확대, 인프라 투자 등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은 무섭게 변화하고 있었고, 소비자들은 ‘지금 살 수 있는 보조금 대상 전기차’를 찾고 있었습니다. 테슬라와 GM은 공격적인 가격 인하와 IRA 보조금 적용 모델 확대를 통해 소비자 선택지를 넓혀갔고, 그 결과 현대차는 소비자들의 관심에서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현대차그룹이 판매하는 대표 전기차 모델들의 판매 흐름을 보면, 위기를 더욱 실감할 수 있습니다. 2024년 한 해 동안 아이오닉 5는 미국 시장에서 약 33,000대가 판매되었지만, 2025년 상반기에는 겨우 13,000대에 그쳤습니다. EV6 역시 2024년 전체 24,300대에서 올해 상반기 9,800대로 급감했고, 아이오닉 6는 출시 초기 디자인 호평에도 불구하고 실적은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하며 상반기 6,000대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기대를 모았던 EV9은 2024년 말에 출시되어 상반기 동안 7,000대를 기록했지만, 3열 SUV 전기차라는 포지셔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요 대비 공급 대응이 미흡한 상황입니다. 이러한 전반적인 판매 부진은 차량 자체의 경쟁력 문제가 아니라, 미국 소비자들의 ‘보조금 수혜 가능성’과 가격 민감도에 대한 대응 부족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단순히 가격 경쟁력뿐만이 아닙니다. 현대차는 전기차 소프트웨어 경쟁에서도 여전히 후발주자에 머물러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2024년부터 OTA(Over-The-Air) 업데이트 기능을 고도화하고 자체 개발 인포테인먼트 운영체제(OS)를 확산하려 했지만, 실제 시장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JD파워의 2025년 전기차 사용자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현대차 전기차 소유자들은 OTA 신뢰도, UI 직관성, 앱 연동성 등에서 평균 이하의 만족도를 나타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능 부족이 아닌, 전기차 소비자들이 기대하는 소프트웨어 완성도에 현대차가 아직 도달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무뇨스 COO는 북미 현지에서 조직 재편과 유통 채널 최적화, 서비스 네트워크 확대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가 추진한 딜러 인센티브 프로그램, 현지 공장 가동 전 마케팅 예열 전략 등은 전통적인 제조업 관점에서는 의미 있는 행보였지만, 전기차 시장이라는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서는 오히려 타이밍을 놓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전기차는 ‘지금 사고 싶은 차’이어야 하는데, 현대차의 전기차들은 ‘내년을 기다려야 하는 차’라는 인식이 시장에 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소비자들은 기다려주지 않았고, 그 사이 경쟁사들은 과감한 가격 전략과 보조금 활용으로 점유율을 빠르게 늘려갔습니다.
IRA에 대응하기 위해 조지아 메타플랜트 완공 시점은 2025년 말로 예상되고 있으며, 여기에서 연간 약 30만 대의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게 되면 보조금 적용 모델도 늘어나고 원가 절감도 가능해질 전망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1년 이상 남은 미래입니다. 그 사이 경쟁사는 더욱 앞서 나갈 것이고, 현대차는 회복보다는 유지에 급급할 가능성이 큽니다. 더구나 현재의 판매 감소는 수익성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습니다. 현대차의 2025년 상반기 북미 시장 전체 자동차 부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약 7% 감소한 것으로 추정되며, 전기차 부문만 따지면 12% 이상 감소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이는 단순히 판매량 감소 때문만이 아니라, 재고 증가와 할인 경쟁에 따른 마진 하락, 그리고 고정비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현대차그룹이 취해야 할 방향은 단기적인 '생산 완성' 중심 전략에서 벗어나, 시장 흐름에 민첩하게 반응하는 유연한 상품·가격 전략으로의 전환입니다. 테슬라와 같은 OTA 기반의 소프트웨어 역량은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렵지만, 고객 만족도를 높이는 커넥티드 서비스와 사용자 경험 개선, 구독형 기능 추가 등은 빠르게 대응 가능한 영역입니다. 동시에 IRA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혜택 — 예컨대 무이자 할부, 충전 지원금, 보증 연장 등 — 을 통해 전기차 구매 장벽을 낮춰야 합니다.
현대차는 여전히 세계적인 디자인 경쟁력, 안정적인 품질, 우수한 제조 역량을 보유한 기업입니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은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특히 미국은 '빠르게 움직이고, 빨리 배우며, 바로 보상하는' 시장이라는 점에서 더욱 민첩한 전략이 요구됩니다. 무뇨스 COO 체제가 출범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현대차그룹이 다시금 점유율을 회복하고 전기차 선도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예정된 성공'이 아닌 '시장의 선택'을 받아낼 수 있는 실행력이 필요합니다. 2025년 하반기부터는 다시 올라설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되지만, 그 전까지는 하루하루를 전략적으로 버텨내야 하는 치열한 시기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