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6월 13일(현지 시각) 행정명령을 통해 일본제철(이하 ‘본제철’)의 149억 달러 규모 US스틸 인수를 승인하면서, 1년 반 가까이 이어졌던 세계 철강업계 최대 빅딜이 마침내 윤곽을 드러냈습니다. 이번 명령은 미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의 국가안보 심사를 조건부로 통과시키는 방식이며, 본제철과 US스틸이 마련한 ‘국가안보협정(National Security Agreement)’을 전제로 합니다. 협정에는 2028년까지 110억 달러(약 15조 원) 이상을 미국 내 설비에 투자하고, 핵심 기술 이전을 제한하며, 중요 의사결정 시 미국 정부가 보유한 ‘황금주(golden share)’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다층적인 안전장치가 포함됐습니다.
이번 승인으로 본제철은 주당 55달러에 US스틸 보통주 전량을 현금 인수하게 되며, 연간 조강 생산능력이 약 6,300만 톤에서 8,600만 톤 수준으로 단숨에 확대됩니다. 글로벌 순위로는 중국 바오우와 중국강철에 이어 세계 3위권을 굳히게 되고, 특히 자동차용 초고장력강과 에너지용 후판 등 고부가 제품에서 북미 시장 점유율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거래는 2023년 12월 양사가 전격 합의한 뒤에도 노동계와 정치권의 반발, 국가안보 이슈로 난항을 겪어 왔습니다. 지난해 1월 3일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잠정 금지령을 내리면서 사실상 좌초되는 듯했으나, 정권 교체 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역사적 파트너십”이라는 기치 아래 노선을 뒤집으며 극적 반전을 이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승인 발표와 함께 “본제철의 대규모 설비투자 약속과 10만 개 이상의 미국 일자리 창출이 철강 산업 재건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본제철은 피츠버그 본사 유지를 비롯해 연구·개발센터 신설, 전기로(EAF) 증설 등을 포함한 투자 로드맵을 미 재무부와 확정했으며, 노조와도 고용·임금·연금 조건에 대한 별도 양해각서를 체결했습니다. 승인 직후 도쿄증권거래소에서 본제철 주가는 전일 대비 3 % 이상 상승했고, 뉴욕증시에 상장된 US스틸은 단기 차익 실현 매물로 소폭 조정을 받았으나 투자은행들은 “장기적으로 배당 정책 유지와 기술 포트폴리오 확장이 주가에 우호적”이라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재무 레버리지 확대와 환율 변동을 단기 우려 요인으로 지적했지만, 북미 고급 강재 수요가 구조적으로 성장 중이라는 점에서 재무 부담이 충분히 상쇄될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이번 인수는 세계 철강 공급망에도 중대한 파급 효과를 가져올 전망입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 이후 자동차·풍력·태양광·데이터센터 등 신규 제조 시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고품질·저탄소 철강 확보가 국가 차원의 전략 과제로 부상했습니다. 본제철은 고로 중심 생산 체제와 전기로 하이브리드 공법을 모두 운영하고 있어, IRA 세액공제 요건인 저탄소 공정을 충족시키면서도 고부가 판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강점을 보유합니다. 이에 따라 독일 티센크루프, 한국 포스코, 중국 대형 국영제철사들도 북미 현지 생산·투자 카드를 속속 검토하고 있습니다.
제품 라인업 측면에서도 시너지 효과가 큽니다. 본제철은 자동차 강판과 전기강판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US스틸은 북미 최대의 주택·건설용 후판·파이프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양사가 보유한 특허와 연구 인력을 교차 활용하면 차세대 초전도 강재나 수소환원제철(HyREX) 공정 등에서 협업 폭이 확대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내 완성차·에너지·IT 기업들은 ‘원산지 규정 충족’과 ‘수요 대응’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 공급계약 체결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전망도 제기됩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조항은 미국 정부가 보유하게 될 ‘황금주’입니다. 이 특별주식은 국가안보상 중대한 사안—예를 들어 주요 자산 매각이나 대규모 설비 이전—에서 미국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합니다. 외국 기업이 전략 산업을 인수할 때 관례적으로 부과되는 조항이지만, 거래 규모와 상징성이 워낙 크다 보니 장기 경영 자율성에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회사 측은 “지분율이 아닌 사안별 심사 방식이므로 예측 가능성이 높다”며 우려를 일축했습니다.
투자자 관점에서는 인수 후 통합 작업(PMI) 속도와 원재료·환율 리스크 관리가 관건이 될 것입니다. 인수가 완료되면 본제철의 순차입금 대비 EBITDA 비율은 일시적으로 2배 중반까지 상승할 전망이지만, 미국 내 고부가 제품 판매 확대를 통해 현금흐름이 개선되면 3년 이내 1배 후반대로 복귀할 것이라는 시뮬레이션이 다수 제시되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 내 철스크랩 가격은 대규모 전기로 투자가 본격화되면 상승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므로, 장기 스크랩·철광석 조달 계약 체결과 탄소배출권 확보 전략을 병행해야 합니다.
정식 종결(Target Closing)은 CFIUS 최종 서명과 펜실베이니아주 법원 승인 등 잔여 절차를 거쳐 빠르면 9월, 늦어도 연말 이전에 완료될 예정입니다. 통합 법인은 ‘US Steel, an NSC Company’(가칭) 브랜드로 출범하며, 글로벌 연구개발 허브를 도쿄·피츠버그·앨라배마 3각 축으로 확대 운영할 계획입니다. 세계 철강업의 지형을 바꿀 중추적 거래로 평가되는 만큼, 향후 본제철이 북미 제조업 르네상스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꾸준히 지켜보실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