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증시에서 자진 상장폐지(자진 상폐)를 추진하는 기업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습니다. 
특히 이재명 정부의 출범 전후로 이러한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는데요, 단순한 우연일까요? 아니면 새로운 정부의 정책 방향과 기업들의 경영 전략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걸까요?

주주권 강화 압박 속 '선제적 상폐' 카드


가장 큰 이유로 꼽히는 것은 이재명 정부의 강력한 주주권 강화 기조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소액주주 보호와 권익 신장을 강조해왔고, 실제로 민주당이 재발의한 상법 개정안에는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 '집중투표제 강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3% 룰' 등 기업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경영 간섭의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는 겁니다. 
특히 그동안 소액주주와 배당 등 주주 환원 문제로 마찰을 빚어왔던 기업들은 주주들의 경영 개입 가능성이 커지기 전에 아예 상장사로서의 책임을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의류 브랜드 '탑텐'을 운영하는 신성통상입니다. 
오랫동안 소액주주와의 갈등이 있었던 신성통성은 최대주주 일가가 100% 지분을 가진 비상장사를 통해 자진 상폐를 위한 공개매수에 나섰습니다. 
특히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주주들의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강하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죠. 
막대한 이익잉여금을 쌓아두고도 소액주주 배당에는 인색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만큼, 상법 개정안 시행 전에 미리 탈출구를 마련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옵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대주주의 숨통을 조이는 정책들


자사주 소각 의무화 움직임도 기업들이 자진 상폐를 고려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 중 하나인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시행될 경우, 자사주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은 이를 소각해야 합니다. 
이 경우 대주주의 지분율이 희석될 수 있다는 점이 기업 입장에서는 큰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통신 소프트웨어 업체인 텔코웨어의 사례가 그렇습니다. 텔코웨어는 상당량의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는데, 만약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되면 막대한 규모의 주식을 소각해야 합니다. 이는 결국 대주주의 지배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자진 상폐를 통해 이러한 위험을 회피하려는 전략으로 보입니다.

밸류업 vs 소액주주 피해, 딜레마에 빠진 시장


이러한 기업들의 자진 상폐 러시에 대해 시장의 시각은 엇갈립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국내 증시의 밸류업(가치 제고) 측면에서 긍정적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한국 증시에는 상장기업 수가 과도하게 많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는데, 자진 상폐를 통해 기업들이 구조적으로 정리되는 과정은 오히려 시장 전체의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시각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소액주주들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현재의 공개매수 가격 산정 방식은 특정 기간의 거래량 가중 평균 주가에 프리미엄을 붙이는 방식인데, 이는 주가 조작의 여지가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따라서 소액주주들이 합리적인 가격에 주식을 팔 수 있도록 공개매수 가격 산정 방식에 대한 재검토와 합리적인 산정 규정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신성통상이나 최근 한솔PNS의 경우 소액주주들의 반발로 공개매수에 실패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는 소액주주들이 더 이상 기업의 일방적인 결정에 끌려가지 않고 자신들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전망은?


이재명 정부의 주주권 강화 정책이 본격화될수록 기업들의 자진 상폐 움직임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분명 기업 경영 환경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국내 증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앞으로 정부는 주주 친화적인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기업의 활력을 저해하지 않고 소액주주들의 정당한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정책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소액주주들 역시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야 할 때입니다.
이번 '탈 상장' 러시가 한국 증시의 장기적인 성장과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앞으로의 변화를 주목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