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BOK이슈노트 : 일본경제로부터 되새겨볼 교훈 2025.6.5]

  • 우리 경제는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가 부러워하는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 그리고 지금 한 세대에 한 번이나 경험할 만한 대내외적 격변의 현장에 서 있다.

  • 먼저 대외적으로 보면, 그간 순풍으로 우리 성장을 뒷받침해 주었던 글로벌 통상질서는 이제 오히려 역풍으로 바뀌는 모습이다. 국가간 첨단기술 패권경쟁이 심화되고 있으며, 지경학적 안보를 중시하는 보호무역주의가 점차 강화되고 있다.

  • 또한 내부적으로는 과거 뜨거웠던 성장엔진이 장기간 누적된 구조적 문제들이 표면화되면서 빠르게 식어가고 있다. 인구고령화가 어느 선진국보다 빠르게 진행됨에 따라2021년부터 인구 축소사회로 진입하였다. 그 결과 인구의 잠재성장률 기여도는 2000년대 0.7~0.9%p에서 21년 이후 0.2~0.3%p로 크게 낮아졌다. 이에 더해 민간부채 누증에 기반한 부동산으로의 과도한 자금 쏠림 현상이지속된 결과, 高생산성 분야로의 자원배분이 미흡하여 우리 경제의 생산성 증가속도가 눈에 띄게 둔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 그러면 우리 경제는 이러한 안팎의 도전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본고는 우리와 유사한 성공경험과 구조변화를 겪었던 일본의 경험에서 배우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 버블붕괴 전후의 일본은 장기간의 저성장⋅저물가를 낳은 부채⋅인구⋅기술 세 측면에서의 구조변화에 직면해 있었다. 즉 ①자산시장發 부채누증, ②인구고령화, ③글로벌 수평분업화라는 삼각 파고가 중첩된 상황이었다.

  •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구조개혁만이 해결책인데, 보완수단인 경기대응 정책에 상당부분 의존한 결과 ④정부 재정여력은 소진되었으며 ⑤통화정책의 유효성도 오랜 기간 제약받을 수밖에 없었다.

  • 우리가 지금 처한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부동산發 가계부채가 우려할 수준까지 누증된 결과, 민간레버리지 비율(GDP대비, 23년 207.4%, IMF)이 일본 버블기 최고치(94년 214.2%)에 근접하였고, 인구고령화 속도는 일본보다 더 빠르다. 또한 우리나라는 2000년 이후 글로벌 수평분업체계에 적극 참여하여 對중국⋅IT 수출 주도로 성장해왔는데, 그 근간인 글로벌 통상질서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으며 중국 특수도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구조변화에 적극 대응하지 않으면 우리도 조만간 재정건전성이 악화되고 가계부채 누증으로 통화정책 운용이 제약되는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 그러면 우리는 일본의 경험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며, 또 어떤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가? 본고는 다섯 가지 교훈에 주목하여 정책방향을 제시하였다.

  • (1) 부동산發 부채누증에는 사전에 단계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부채가 이미 부실화되었을 경우에는 이를 신속히 구조조정하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ㄱ) 정밀한 거시건전성규제 운용 및 (ㄴ) 통화정책과의 공조 강화, (ㄷ) 가계부채 관리기조 견지, (ㄹ) 신속⋅과감한 구조조정 등으로 부채비율을 보다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 (2) 저출산·고령화는 일본경제가 결국 장기침체에 들어서게 된 주된 요인이다. 대응이 늦어질수록 큰 비용을 오랫동안 치러야 한다. 일본은 1996년부터 생산연령인구가 감소하였으나, 보수적 관행(정규공채 선호, 양육부담 여성편중) 등으로 유휴인력의 사회진출이 어려웠다. 그리고 장기침체와 일손부족(2010년대 이후)을 겪은 후에야 여성과 고령층, 외국인 노동자를 적극 활용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주요 정책 선례를 참고하여 유휴인력(경력단절 여성, 숙련은퇴자, 청년 등) 생산 참여 확대, 혁신지향적 교육투자 강화 등으로 노동력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확충해 나가야 한다. 더불어 외국인 노동력을 보다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출산율을 단계적으로 제고하는 노력도 지속해야 한다.


  • (3) 한국과 일본은 제조업 중심의 수출 성장모델로 성공하였다. 그러나 과거의 강력한 성공경험은 이후 국내외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와중에서 구조개혁을 추진하는 데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일본은 수직통합생산으로 선진국미국, 유럽 등에 고품질제품을 수출하면서 성장하였으나, 1990년대 이후 글로벌 수평분업생산 등장에 미온적으로 대응한 결과 글로벌 제조업 경쟁에서의 우위가 약화되었다. 이제 글로벌 통상질서 변화, 중국의 자급률 제고에 따라 우리도 기존 성공전략을 비판적으로 되돌아 볼 시점이다. 우리나라는 무엇보다 첨단산업 육성에 역량을 모아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반도체, AI 등 핵심기술이 국가전략산업으로서 국가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인재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글로벌 인재 유치뿐 아니라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한 인센티브 구조를 마련하여야 한다. 또한 고부가가치 서비스 수출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이번 통상갈등 이전에 이미 세계교역에서 상품교역 비중이 줄고 서비스교역의 비중(2011 19.4% → 2023년 24.1%)이 커지고 있었으며 제조업의 서비스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IT, 의료, 문화콘텐츠 등의 고부가가치 서비스가 핵심수출산업으로 성장해 나가도록 과감한 규제완화로 뒷받침하여야 한다.

  • (4) 인구고령화로 인한 경직적 재정지출(연금·의료보험) 증가는 정부 재정여력을 빠르게 소진시키는 핵심요인이다. 이해당사자 반발, 정치적 부담 등의 이유로 사회보장지출(고령화 관련) 증가에 선제 대응하지 않는다면, 재정의 경기대응 능력이 저하되고 장기적으로는 국가신인도까지 영향받게 된다. 또한 사회적으로는 세대간 갈등도 심화될 수밖에 없다. 1990년대 이후 일본 정부부채 대부분은 연금·의료보험 지출로 증가했으며, 우리나라도 2010년대 이후 이러한 모습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재정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적자재정(경기위축 대응) 이후에는 흑자재정을 통해 재정여력을 복원하는 관행이 자리잡아야 한다.

  • (5) 전통적이든 비전통적이든 통화정책은 경기대응수단이지 경제체질 개선 수단이 아니다. 잠재성장률 제고는 구조개혁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통화정책은 이를 경기적 측면에서 보완하는 보조적 역할에 그쳐야 한다. 일본은 저성장⋅저물가를 탈피하기 위해 경제체질 개선 노력보다는 전통적 통화정책이 한계에 다다르자 각종 비전통적 통화정책(양적완화, 위험자산매입, 마이너스금리, 수익률곡선제어 등)에 의존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2024년 12월 일본은행은 비전통적 통화정책이 단기적 경기부양효과는 있었으나 성장잠재력을 회복시키지 못하였고 오랜기간 지속되어 부작용(금융시장 왜곡 등)을 유발하였다고 자평하였다. 향후 우리나라 통화정책 운용 과정에서도 이러한 일본은행의 정책 성과와 부작용을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

  • 우리 경제는 갈림길에 서 있고, 노르베르그역사학자가 「Peak Human」에서 설파한 바와 같이 한 국가의 흥망성쇠는 운명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이다. 여러 분야에서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실제로 대내외 여건이 우리에게 양호하였던 적이 거의 없었지만, 우리 경제는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단기간 도약한 것처럼 저력이 있다. 또 끊임없는 혁신노력으로 제조공정분야에서는 여전히 선두권의 경쟁력이 있으며, K-콘텐츠 등 서비스업종에서도 소프트파워를 키워나가고 있다. 결국 일본의 과거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 우리 경제수준에 비해 노후화된 경제구조를 혁신(창조적 파괴)해야만이, 우리 경제가 다시 활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시사점>

한국은행이 일본경제로부터 배울 교훈을 정리한 BOK이슈노트를 어제 발간했습니다.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일본은 부동산 자금쏠림현상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2. 저출산 고령화에 대처하지 못했다.

3. 국내외 환경변화에 대처하지 못했고 구조개혁을 이루지 못했다.

4. 경직적 재정지출(연금, 의료보험) 증가는 정부 재정여력을 빠르게 소진시켰다.

5. 일본의 각종 비전통적 통화정책은 단기적 경기부양 효과는 있었지만 성장잠재력을 회복시키지는 못했다.

KBS뉴스는 한국은행의 이슈노트와 관련해 "한국과 일본, 다섯개가 닮았다"는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그런데 필자의 의견으로는 이는 다소 단언적 표현으로 다섯개가 닮을 수 있다가 적절한 표현이겠습니다. 아직 우리경제는 일본경제처럼 진행될 가능성은 매우 높으나 그렇다고 반드시 그렇게 될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먼저 가계부채를 보면, 2024년 기준 한국의 GDP대비 가계부채비율이 91.7%로 캐나다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이며 세계평균 60.3%를 크게 웃돌고 있습니다. 이러한 높은 가계부채는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경우 가계부실로 이어져 금융권 위기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일본과의 차이점은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금융권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매우 건실화되어 있는 데다, 최근 수년간의 높은 이익증가세로 충분한 자금여력을 가지고 있어 충격을 견딜 수 있는 체력이 마련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가계부채 위기가 와도 예전의 외환위기 시절 처럼 속절없이 무너지는 사태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다음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한국이 일본을 빠르게 답습해 가는 상황에 있는 것이 맞습니다. 일본은 1994년에 고령사회에 들어선 후 2007년에 초고령사회를 맞이했습니다. 한국은 2017년에 고령사회에 이른 이후 불과 7년 후인 2024년에 초고령사회에 도달했습니다. 이 속도는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본이 '천천히 가라앉은 배'라면 한국은 '빠르게 침몰하고 있는 배'입니다. 따라서 보다 빠르고 강력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일본에서 추진되었던 출산장려정책, 노인복지강화, 노동시장개혁, 이민정책 등이 큰 효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사회전반적인 보수적 관행으로 인해 이러한 개혁정책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즉 한국이 이 문제에 제대로 대응할려면 사회의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알을 깨는 변혁이 요구됩니다.

산업면을 보면, 한 때 세계를 제패했던 일본이 급격한 환경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경쟁우위를 많이 상실했습니다. 한국도 그동안 빠르게 성장하던 국가에서 성장이 정체되는 국가로 이행하고 있으며, 심지어 잠재성장률의 지속적인 하락으로 2040년이면 마이너스로 빠져들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의 주력산업인 반도체와 2차전지가 중국의 매서운 추격을 받고 있으며, 첨단산업인 AI와 로봇에서는 한 수 뒤지는 양샹을 보이고 있습니다. 영토가 작고 부존자원이 거의 없는 한국은 오로지 기술강국으로 우뚝 설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기술을 다 잘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반도체, 2차전지, 방산, 조선은 이미 세계 1위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국가 전략산업화를 통해 경쟁우위를 지속 유지시키는 한편, 첨단산업인 AI와 로봇도 한국의 반도체와 2차전지산업과 연계해 기술력을 높혀 나가야 하겠습니다. 또한 한국은행이 지적하듯 고부가가치 서비스 수출을 확대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정부부채 부분을 보면, 일본의 GDP대비 정부부채비율은 약 240%(2023년) 수준입니다만, 한국은 55.2%(2023년, 2025년 54.5% IMF추정) 수준으로 일본이나 기타 선진국(대부분 100%를 넘고 있음)보다 매우 양호한 상태입니다. 이재명 정부가 재정을 활용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데에는 이러한 상대적으로 낮은 정부부채비율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빠른 속도로 저출산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어 정부부채비율 역시 빠르게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재정건전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마지막으로 통화정책을 보면, 일본은 저성장 저물가를 탈피하기 위해 각종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활용했으나 성장잠재력을 회복하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통화정책만으로는 성장잠재력을 회복할 수 없다는 일본의 교훈을 받아들여 성장잠재력 회복을 위한 (ㄱ) 노동시장 구조개혁, (ㄴ) 연금복지제도 개혁, (ㄷ) 첨단산업 육성 및 생산성 향상, 규제 개혁 및 기업활력 제고, (ㄹ) 교육개혁 및 인재양성, (ㅁ) 재정세제 구조개편 등 5대 부분 개혁이 추진되어야 합니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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