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반도체는 원래 예정되어 있던 IR 일정을 갑작스럽게 연기했습니다. 이는 SK하이닉스와의 고대역폭메모리(HBM) 핵심 장비 ‘TC본더’ 공급을 둘러싼 갈등 이후에 발생한 조치로 해석됩니다. IR을 통해 투자자들에게 구체적인 전망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에서 SK하이닉스의 신규 입찰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명확한 설명이 어렵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TC본더는 한미반도체가 단독으로 SK하이닉스에 공급해왔으나, 최근 SK하이닉스가 한화세미텍과도 계약을 체결하며 듀얼 벤더 체제로 전환하면서 관계가 틀어진 것입니다.
한미반도체는 한화세미텍이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고, 실제로 한화세미텍에 이직한 전 직원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1·2심 모두 승소한 전력이 있습니다. 또 한미반도체는 특허 침해와 관련해 국내 대형 로펌인 '세종'을 선임하여 본격적인 법적 대응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응해 SK하이닉스에 납품 가격을 28% 인상하겠다고 통보하고, 이천 공장에 파견한 CS 엔지니어 전원을 철수시키는 강경한 조치를 취하면서 갈등은 격화되고 있습니다.
기관 투자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한화비전 쪽으로 수급을 크게 이동시키고 있으며, 실제로 올 들어 한미반도체는 1541억 원 규모의 기관 순매도가 발생한 반면 한화비전은 약 2776억 원어치 순매수를 기록했습니다. 이 같은 수급 악재는 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한미반도체 주가는 고점 대비 50% 이상 하락한 바 있습니다. 공매도 잔고 역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최근의 반등세에도 불구하고 상승세가 이어질지에 대한 시장의 신뢰는 낮은 편입니다.
반면 한화세미텍은 SK하이닉스로부터 420억 원 규모의 TC본더 계약을 수주하며 투자자들의 기대감을 모으고 있고, 이로 인해 한화비전의 주가는 최근 몇 달 동안 두 배 가까이 상승했습니다. 이는 한화세미텍이 HBM 시장의 급성장 속에서 장비 수요 증가를 선점하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기관투자자들의 긍정적 시각을 반영한 결과입니다.
한미반도체는 향후 실적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81%, 139%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TC본더의 해외 매출 확대, 특히 북미 및 중화권 수요 증가로 평균판매단가가 상승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정민규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올해 한미반도체 매출이 전년 대비 48%, 영업이익은 65.5%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한미반도체는 주주환원 정책에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자사주 소각, 비과세 배당, 지속적인 자사주 매입 등의 방안을 제시했으며, 올해 5월에는 130만 주 이상의 자사주를 소각할 계획입니다. 또한, 미국 현지 법인을 설립해 북미 AI 반도체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계획이며, 글로벌 매출 확대를 통해 2026년까지 매출 2조 원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곽동신 회장의 경영 스타일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와의 관계에서 강경한 조치를 취한 것은 회사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영 철학의 반영이며, 실제로 주가 하락 시 자사주를 대량 매입하고, 자녀에게 주식을 증여하는 등의 행보를 통해 주가 안정과 기업가치를 높이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곽 회장은 최근 서울 강남 신사동에 1000억 원 규모의 부동산을 매입해 자동차 전시장 신축에 나서는 등 반도체 외 사업 영역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으며, 시계 브랜드와 자동차 영업소 등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가족회사 곽신홀딩스를 통해 전개하고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곽 회장의 강한 리더십과 과감한 경영이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나갈지 주목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SK하이닉스와의 갈등이 장기화되기보다는 상호 발전적인 방향으로 해소되기를 바라는 분위기도 감지됩니다. 공급망 다변화가 필수적인 시장 상황 속에서, 한미반도체가 기술 경쟁력과 시장 신뢰를 유지하며 다시 한번 성장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