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쌀값이 폭등하면서 한국산 쌀이 35년 만에 일본에 수출되고, 판매 시작 10일 만에 완판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전남 해남군 옥천농협이 생산한 ‘땅끝햇살’이라는 브랜드 쌀은 일본의 농협 온라인몰과 도쿄 신오쿠보의 한국 슈퍼마켓 등에서 판매되었으며, 가격은 관세와 배송료를 포함해 10kg에 약 9만 원, 4kg에 약 4만 1천 원으로 책정되었습니다. 일본의 평균 쌀값이 5kg에 4천 엔대 초반(약 4만 원)인 점을 감안하면 가격경쟁력은 낮아 보일 수 있지만, 일본 내 쌀값이 폭등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가격 대비 품질이 뛰어난 한국산 쌀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의 일부 매장에서는 kg당 1만 원이 넘는 쌀도 판매되고 있어, 땅끝햇살은 이보다 약 10% 저렴한 수준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번에 수출된 땅끝햇살은 찰진 식감과 윤기, 고소한 맛으로 국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은 쌀입니다. 실제로 전국소비자연합회 식미 평가 1위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전남 10대 고품질 브랜드 쌀로도 뽑혔습니다. 현재까지는 2톤이 테스트 성격으로 수출되었으며, 이후 10톤 규모의 추가 물량이 선적됐고, 향후 총 22톤 규모까지 수출이 확정되었습니다. 한국 쌀이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출한 사례로는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며, 2010년대 초 동일본 대지진 당시 구호용으로 소량 수출된 것을 제외하면 유통 목적의 수출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이번 현상은 단순히 쌀의 품질이나 가격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일본의 쌀값 급등은 단기간 내에 발생한 이상 현상이 아니라, 지난 수십 년간 누적된 정책 실패가 근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1970년대부터 과잉생산을 방지하기 위한 ‘감반정책’을 추진해왔고, 이후 보조금으로 농가를 지원하면서 생산량을 통제해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농업 인프라는 약화됐고, 고령화와 후계자 부족 문제까지 겹치면서 벼 재배 기반이 붕괴되어버렸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상기후에 따른 흉작, 관광객 증가, 지진에 따른 사재기 등이 겹치면서 일본의 쌀 수급 체계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비축미를 시장에 수차례 방출했지만 가격은 여전히 상승 중이며, 쌀 가격은 14주 연속 상승세를 보이며 연중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농림수산성은 심지어 “쌀이 어딘가에 쌓여 있을 수 있다”는 음모론까지 제기했지만 조사 결과 재고는 없었고, 수요 예측의 실패만 드러났습니다.


이러한 일본의 농업 위기와 맞물려 중요한 외교 이슈로 떠오른 것이 바로 미국과의 관세 협상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부터 일본의 비관세 장벽을 문제 삼아왔으며, 특히 쌀과 자동차를 주요 협상 대상으로 지목했습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일본의 쌀 시장에 대해 “규제가 불투명하고 수출업체의 접근을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고, 이에 따라 일본은 미국산 쌀 수입 확대를 협상 카드로 검토 중입니다. 이는 일본 내 농민과 보수층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기도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산 자동차에 대한 규제를 문제 삼으며, 미국산 자동차가 일본에서 충분히 팔리지 않는 현실을 지적했고,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안전인증 간소화 등 수입 절차를 조정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습니다. 트럼프는 지난 3월, 일본의 협상 대표에게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모자를 직접 씌우는 사진을 백악관에서 공개하며 외교적 압박을 가했는데, 이는 일본 내에서도 “굴욕 외교”라는 비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특히 ‘마가자와’라는 조롱 섞인 별명까지 생기며 일본 정부가 미국에 지나치게 저자세로 임한다는 비판 여론이 커지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미국의 요구에 일정 부분 응하면서도 방위비 문제나 안보 이슈가 관세 협상에 끌려들어가는 것은 경계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그러나 쌀과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무역협상은 트럼프식 압박 외교의 전형으로, 일본이 이들 이슈를 통해 미국과의 무역 적자 문제를 일정 부분 해소해주길 바라는 트럼프 정부의 전략이 명확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산 쌀이 일본에 진출하게 된 것은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품질, 가격, 브랜드력에서 일정 수준 이상을 충족하면, 고급 소비시장을 겨냥해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입니다. 일본 소비자들은 단순히 싸고 많은 쌀이 아니라, 맛과 식감을 중시하는 까다로운 소비자층입니다. 이번 땅끝햇살의 완판 사례는 이런 시장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점을 입증한 셈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쌀 부족 현상이 단기적으로 끝나지 않을 경우, 수입 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국내 농민들의 반발도 커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이미 농민들이 ‘쌀 감산 정책’에 반발하며 트랙터 시위까지 벌이고 있습니다. ‘농민봉기’라는 의미의 ‘햐쿠쇼잇키’라는 단체가 시위를 주도했고, 농민들은 농업소득 보장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 농업이 구조적으로 지속 가능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한국도 일본과 다르지 않습니다. 10년간 논 면적은 18.5% 줄었고, 농가 소득은 제자리인 반면, 생산비는 급증했습니다. 정부는 벼 재배면적 감축을 계속 추진 중이며, 이에 따른 농촌 붕괴와 식량안보 문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농업정책의 방향이 단순한 감산이 아니라, 농업 기반 유지와 농가 소득 보장, 식량안보 확보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일본의 사례는 결코 먼 미래가 아닙니다. 쌀은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국가 전략자산으로 보아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