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브랜드 에르메스가 다음 달 1일부터 미국에서 제품 가격을 인상할 예정입니다. 에르메스의 재무 담당 부사장은 이번 가격 인상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조치로 인한 기업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상쇄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미국에만 적용되는 가격 인상으로, 이달 초 부과된 10%의 보편 관세를 반영해 소비자가격을 조정하는 것입니다. 에르메스 측은 관세 부과에 따른 즉각적인 영향은 없었지만, 보수적인 전략 차원에서 대응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재 명품 업계는 전 세계적인 경기 둔화와 트럼프발 무역전쟁 여파 속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는 미국의 관세 조치에 따른 불확실성으로 인해 실적 부진을 겪었고, 최근 1분기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자 주가가 8% 가까이 폭락하면서 한때 프랑스 시가총액 1위 자리를 에르메스에 내줬습니다. LVMH는 매출의 25%를 미국에서 창출하고 있고, 특히 와인과 증류주 부문에서는 미국 의존도가 34%에 달하기 때문에 고율 관세는 매출에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미국에서의 생산 확대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유럽연합의 협상 전략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최근 미국 SNS와 틱톡 등에서는 중국 공장에서 생산되는 고가 명품의 원가를 폭로하는 영상들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에르메스 버킨백, 나이키 운동화, 룰루레몬 요가복 등의 제조원가와 실제 소비자 가격 간의 차이가 극단적으로 비교되며, 이들이 대부분 중국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영상 속 관계자들은 "가격의 대부분은 브랜드 로고값"이라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으며, 이러한 콘텐츠는 단순한 폭로를 넘어 중국 OEM 생산자들의 직접 판매 유도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연합에 대해 일단 기본 10% 관세만 적용하고 상호관세는 90일 유예한 상태지만, 시장에서는 이마저도 충분히 가격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미국 패션 전문지 WWD에 따르면 단순 계산으로 20%의 관세가 반영될 경우, 샤넬 클래식 플랩백 스몰 사이즈는 약 1770만 원, 디올 레이디백은 약 1105만 원까지 상승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만 이러한 수치는 극단적인 가정이며, 실제로는 소매가 기준이 아닌 도매가에 관세가 부과되기 때문에 소비자가격 인상 폭은 일반적인 연간 조정폭인 5~7%를 크게 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전문가들은 특히 에르메스와 같은 ‘명품 중 명품’ 브랜드는 다른 브랜드보다 가격 인상 여력이 크다고 평가합니다. 에르메스는 2021년 이후 6차례 가격을 인상했지만, 샤넬은 같은 기간 무려 14차례나 인상했습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에르메스가 여전히 가격 대비 브랜드 가치가 유지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투자은행 TD 코웬은 에르메스와 리치몬트를 명품업계에서도 투자 가치가 높은 브랜드로 지목하며, 트럼프 관세 정책과 같은 외부 충격에도 방어력이 높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나 전반적인 명품 시장 전망은 어둡습니다. 명품은 일반적으로 가격 인상이 수요 감소로 이어지지 않는 비탄력적 상품으로 분류되지만, 글로벌 경제 불안정과 소비심리 악화가 겹치면서 올해 역성장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옵니다. 번스타인은 올해 명품업계 매출이 2%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고, 특히 구찌의 경우 1분기 매출이 25%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바클레이즈 또한 루이비통의 핵심 제품군 매출이 감소세에 접어들었다고 분석했습니다.
한국 시장의 경우,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등 ‘에루샤’로 불리는 상위 브랜드는 여전히 높은 실적을 기록하며 선방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지난해 이들 브랜드는 총 4조 500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고, 에르메스코리아의 매출은 9643억 원으로 전년 대비 21% 증가했습니다. 이는 경기 침체와 무관하게 프리미엄 브랜드에 대한 국내 수요가 여전함을 방증합니다. 다만, 이러한 호실적에도 불구하고 사회공헌 기부금은 배당액 대비 매우 적은 수준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은 글로벌 명품 시장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관세로 인한 불확실성과 글로벌 경기 둔화가 겹치며 명품업계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하지만 에르메스를 비롯한 일부 초고가 브랜드는 브랜드 충성도와 가격 결정력을 바탕으로 상대적인 우위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