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배터리 전쟁’으로 법정 공방을 벌였던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LG에너지솔루션 포함)이 4년 만에 다시 손을 잡았습니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가 LG화학 및 LG에너지솔루션에 분리막을 공급하기로 하면서, 양측의 냉랭했던 관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LG-SK, 4년의 단절을 넘다
이번 계약은 단순한 ‘납품’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2020~2021년, 배터리 기술 유출을 둘러싼 소송전 이후 LG에너지솔루션과 SK그룹 계열 배터리 소재사 간 거래는 완전히 중단됐습니다.
SKIET는 LG에너지솔루션의 주요 분리막 공급업체였지만, 관계 단절 이후 적자전환까지 겪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재계약으로 SKIET는 전기차 30만 대 분량의 분리막을 LG에 공급하게 되며, 공급 금액은 1,00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SKIET가 미국 현지 배터리 셀 제조업체에 공급하는 형식이지만, 업계에서는 최종 고객이 LG에너지솔루션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전환점이 된 건 ‘트럼프’
이들의 극적인 협력 복원 배경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 견제 정책이 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그동안 중국 분리막 제조사들과 협력해 왔지만, 미국의 ‘중국산 배터리 소재 배제’ 기조가 강화되면서 공급망을 한국산으로 전환할 필요성이 커졌습니다.
여기에 LG에너지솔루션의 현 경영진은 “가격만 맞으면 거래 가능하다”는 실리 중심의 판단을 내리면서, 명분보다는 생존과 경쟁력을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SK넥실리스도 기회 잡을까?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업계는 SK넥실리스의 복귀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동박을 제조하는 SKC 자회사 SK넥실리스는 2020년 이후 LG에너지솔루션과의 계약이 중단됐고, 그 물량은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등 경쟁사로 넘어갔습니다.
만약 SKIET에 이어 SK넥실리스까지 재계약에 성공한다면, SK그룹 배터리 소재 부문 전반에 걸친 실적 개선도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
맺으며: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
이번 사례는 글로벌 공급망, 지정학, 기업 경영 전략이 어떻게 얽히며 돌아가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명분과 자존심이 앞섰던 과거를 뒤로하고, ‘실용과 생존’의 가치가 지배하는 배터리 산업의 현재를 상징하는 한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