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란은 지난 3월 31일 서울회생법원에 기습적으로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습니다. 불과 일주일 전인 3월 24일부터 셀러들에게 판매 대금을 정산하지 않아 업계에 큰 충격을 주었던 이 사태는, 마치 지난해 1조 원 이상 피해를 낳은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를 연상케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단순한 유동성 위기의 차원을 넘어, 셀러들에게 신뢰를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사태가 진행되었다는 점입니다. 발란은 초기에는 대금 정산 일정 공지를 약속했으나 이를 지키지 않았고, 일부 셀러들은 발란이 정산 의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다 갑작스럽게 회생 신청을 한 것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발란은 2015년 설립 이후 한 번도 영업이익을 내지 못했습니다. 2021년에는 급격한 성장으로 주목받았으나, 최근 3년간 영업활동현금흐름이 계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사업을 영위하면서도 손실만 누적해왔습니다. 특히 코로나19 특수를 타고 성장했던 시기 이후, 엔데믹과 경기침체로 명품 수요가 줄어들면서 본격적인 한계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경쟁사 대비 지나치게 공격적인 마케팅에 의존해온 경영 전략은 결과적으로 기업의 체력을 약화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광고선전비는 2021년 190억 원, 2022년 385억 원에 달했으며, 이에 따른 누적 적자는 700억 원 이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이번 기업회생 신청은 셀러들에게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발란의 정산 주기는 45일로, 다른 이커머스 플랫폼보다 현저히 느린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 약 1300개 입점 셀러들이 2~3월 판매 대금을 정산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로 인해 단체 고소와 형사 고발을 준비 중인 셀러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특히 발란은 회생 신청 직전까지도 셀러들에게 유료 마케팅 프로그램 가입을 유도해, 고의적으로 충전금을 확보하려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습니다. 한 셀러는 4000만 원 이상 충전금을 맡겨둔 상태에서 판매 대금까지 받지 못해 이중 피해를 입었다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발란은 회생 신청 당시 인수합병(M&A)을 병행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며, 이미 매각 주관사 선정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부정적인 시선이 더 우세합니다. 매출은 2023년 기준 392억 원에 그쳤고 영업손실은 99억 원, 자본총계는 마이너스 77억 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누적 투자 유치 금액 735억 원도 전액 손실 처리될 가능성이 크며, 최근 전환사채 방식으로 75억 원을 투자한 실리콘투 역시 회수 가능성이 낮은 상황입니다. 벤처캐피털들은 대부분 우선주 투자에서 보통주로 전환한 상태이기 때문에 회생 절차상 변제 순위에서도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더불어 이번 발란 사태는 머스트잇과 트렌비 등 유사한 구조를 가진 다른 명품 플랫폼에 대한 불안감도 키우고 있습니다. 머스트잇은 지난해 79억 원, 트렌비는 32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습니다. 발란과 함께 이른바 ‘머트발’로 불리며 1세대 명품 플랫폼의 대표주자로 성장해온 이들이지만, 과도한 마케팅 경쟁과 수익구조 부재로 인해 공통된 위기를 맞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명품 플랫폼 시장의 판도가 흔들릴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특히 대기업 계열 이커머스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롯데온은 ‘온앤더럭셔리’를 통해, SSG닷컴은 ‘SSG럭셔리’를 통해, 11번가는 ‘우아럭스’를 통해 각각 명품 전문관을 운영하며 MZ세대를 포함한 다양한 소비층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백화점과 면세점 노하우를 바탕으로 브랜드 신뢰도와 직매입 역량을 갖춘 만큼, 중소 플랫폼 대비 안정적인 정산 시스템과 재무 건전성에서 상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단순히 한 기업의 몰락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코로나 이후 경기침체로 이커머스 시장이 성장이 둔화되며 출혈 경쟁을 감당할 수 없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이 명확히 구분되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이커머스 생태계는 구조조정을 거쳐 자본력과 신뢰성을 갖춘 대형 플랫폼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이커머스에는 정산 주기에 대한 명확한 규제가 없는 만큼, 셀러 보호를 위한 제도적 보완도 시급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