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3조 6천억 원에 달하는 역대급 유상증자를 발표하면서 투자자들과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유상증자는 기업이 새로운 주식을 발행해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입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번 증자를 통해 발행할 신주를 기존 주가 대비 15% 할인된 가격인 주당 60만 5천 원에 제공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 이후 주가는 급격히 하락하면서 투자자들의 우려와 비판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실제로 발표 직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주가는 하루 만에 약 13%나 떨어졌으며, 주주들 사이에서는 이 결정이 '폭탄 유증'이라 불리며 강한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투자자들은 유상증자가 기존 주주들의 지분을 희석시켜 주식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유상증자 발표 이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기업설명회를 열어 자금의 사용처에 대해 구체적으로 공개했습니다.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총 3조 6천억 원 중 약 1조 6천억 원은 해외 방산 부문에 투입되고, 국내 방산 부문에 9천억 원, 해외 조선 부문에 8천억 원, 그리고 무인기 엔진 부문에 3천억 원이 각각 배정될 예정입니다. 회사 측은 이러한 투자가 방위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고 장기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투자자들과 시장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합니다. 특히 현금흐름이 좋은 상황에서 굳이 대규모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 조달이 필요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실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이미 약 1조 3750억 원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높은 신용등급 덕분에 회사채 발행이나 금융권 차입 등 다른 자금조달 방법도 충분히 가능했습니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과 투자자들은 기업이 유상증자를 결정하기 전 주주들과 충분한 소통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절차적 정당성 문제를 강하게 제기했습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역시 성명서를 통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경영진과 이사회가 일반 주주들의 피해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했는지, 자금조달 방식에 대한 충분한 사전 논의가 있었는지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밝혔습니다. 또한 이사회가 너무 짧은 시간 내에 급히 의사결정을 내렸다는 의혹까지 제기하며 투명성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시장 안팎에서는 지난해 유상증자를 성공적으로 진행한 미국 항공기 제조업체 보잉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사례를 비교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보잉은 35조 원에 이르는 사상 최대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하면서도 시장과 주주들의 신뢰를 얻어 주가 상승을 이끌었습니다. 이는 보잉이 사전에 충분히 시장과 소통하고 경영진이 명확한 비전을 제시해 주주들의 동의를 얻었기 때문이라는 평가입니다. 반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충분한 사전 소통과 주주 배려가 부족했다는 점에서 비판받고 있습니다.
한편, 주가 급락 이후 주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경영진은 책임경영 차원에서 자사주 매입에 나섰습니다. 특히 오너 일가이자 전략부문 대표이사인 김동관 부회장은 개인적으로 30억 원 규모의 주식을 매입하겠다고 발표했고, 사업부문 대표 손재일 씨와 전략부문 사장 안병철 씨도 각각 9억 원과 8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추가로 매입하기로 했습니다. 경영진의 이 같은 결정은 주주들의 신뢰를 회복하려는 의지로 풀이되지만, 증자 규모에 비하면 매우 미미한 수준이어서 시장에서는 충분한 대응이 아니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 역시 이번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에 대해 비교적 이례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습니다. 금감원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1999년 이후 처음으로 진행하는 유상증자이며, 자금의 사용처가 K-방산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회사 측 입장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다만 금감원도 주주들과 충분히 소통하는 과정이 있었는지 여부를 심사의 중요한 항목으로 고려할 예정이라 밝혀, 아직 완전히 안심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글로벌 방산 시장의 흐름과 비교해 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이번 유상증자 결정 자체는 글로벌 추세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방산 기업들은 대규모 자금 투자를 통해 생산시설과 공급망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방산기업 라인메탈은 최근 독일과 리투아니아에 각각 수천억 원 규모의 탄약 공장을 건설하고 있고, 영국의 BAE시스템즈 역시 영국과 스웨덴에 신규 생산시설에 대한 투자를 진행 중입니다. 이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 이후 방위비 지출이 급격히 확대될 것이라는 예측에 따른 대응으로 풀이됩니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가 NATO 회원국들에 GDP의 5% 수준의 방위비 지출을 요구하면서 유럽 주요국들은 방산 투자를 크게 확대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도 최근 8000억 유로(약 1265조 원) 규모의 대규모 재무장 계획을 발표했으며, 이 중 1500억 유로(약 237조 원)는 유럽 내에서 자체적으로 생산된 무기 구입에 활용할 예정입니다. 이는 한국 방산업체들이 유럽 시장에서 더욱 치열한 경쟁에 직면할 가능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비하여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포함한 국내 방산업체들이 현지화된 생산시설 확보와 유지보수(MRO) 서비스 확대 등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의 신뢰를 높이고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번 유상증자에 대한 시장의 우려는 자금 조달 방식 자체보다는, 투자자들과의 충분한 소통과 공감대 형성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회사 측이 시장과 주주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서는 향후 자금 투입 과정에서 투명성과 명확한 경영 비전을 지속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